‘떠나는 마을’에서 ‘다시 오는 마을’로: 경북 영양의 작은 변화
경상북도 북부, 낙동정맥을 끼고 있는 인구 1만 명 남짓한 산골 마을, 영양군.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청년층 유출률이 전국 상위권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고,마을에는 노인 인구만 남는 구조가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던 중, 2019년 말부터 이 마을에 외지 청년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몇 명의 디지털 노마드가 단기 체류를 위해 머물렀고,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작은 공유공간이 지금의 ‘무인(無人) 코워킹 스페이스’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 공간은 시에서 지원한 청년 주거 공간의 1층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책상 몇 개, 콘센트, 인터넷, 그리고 바깥 풍경이 전부였습니다.
관리자는 따로 없었지만, 사용자는 누구나 지켜야 할 규칙을 자율적으로 정해 운영했고,
입소문을 타고 점차 외지 청년, 프리랜서, 소규모 창업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2년 만에,이 코워킹 스페이스를 중심으로 거주지를 옮긴 청년이 40명이 넘었고,
그중 절반 이상은 실제 주민등록 이전까지 완료한 상태입니다.
처음엔 단기 워케이션으로 왔지만,공간에 머물며 지역 사람들과 연결되고,
자신의 삶을 이 마을에 뿌리내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쌓였습니다.
영양의 사례는 단순한 성공이 아닙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던 작은 마을이,
하나의 공간을 통해 외부 인구가 유입되고 정착한 드문 케이스입니다.
코워킹 스페이스가 ‘일하는 공간’을 넘어선 순간
영양군에서 만들어진 코워킹 스페이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단순히 빠른 인터넷이나 저렴한 사용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 공간은 점점 ‘일을 매개로 관계를 맺는 장소’로 진화하게 되었고,
그 변화가 사람들의 정착을 이끌었습니다.
처음부터 계획된 건 아니었습니다.
공간이 생기자 외지에서 들어온 몇몇 리모트 워커들이 자주 방문했고,
그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이 동네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걸 듣는데, 그게 로컬 콘텐츠 아이디어로 연결됐어요.”
실제로 이들은지역의 옛 사진을 디지털화해 기록 콘텐츠로 만들거나
전통 장류를 만드는 마을 할머니와 함께 브랜드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마을 초등학교 학생들과 미디어 교육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등
공간 안에서 지역과의 접점을 만드는 일을 자발적으로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연결은 ‘사업’이기 전에 ‘관계’였습니다.
코워킹 스페이스가 단순한 책상 대여가 아니라
‘지역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공 허브’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지역 주민들이 이 공간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마을 청년회, 노인회와의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한 달에 한 번 ‘공유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외지 청년과 지역 주민이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구조가 생겼습니다.
이 과정에서,리모트 워커들은 단순 방문자가 아니라
지역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그 경험은 단기 체류를 넘어 정착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도시를 떠나 다시 ‘속도’를 찾은 삶
이 코워킹 스페이스를 계기로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에서의 속도에 지친 리모트 워커, 콘텐츠 크리에이터, 디자이너, 프리랜서들이었습니다.
그중 한 명인 김정은(가명) 씨는 서울에서 8년간 프리랜서 UX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우연히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영양을 방문했고,이후 아예 이 마을에 거주지를 옮겼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처음엔 한 달만 있으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일이 더 잘 됐어요.
사람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말수는 줄었지만 집중력은 올라갔어요.”
그는 현재 지역 기업의 웹사이트를 디자인해주며 수익을 내고 있으며,
동시에 공간에서 만난 크리에이터들과 소규모 디자인 협업 팀을 꾸려 외부 프로젝트도 진행 중입니다.
또 다른 사례로, 영상 촬영을 하는 1인 미디어 운영자 이정우 씨는
도시에서는 늘 촬영 장소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 마을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촬영지가 다양했고,
지역 주민들이 촬영을 도와주며 더 풍부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루 종일 앉아서 편집하던 제가,이제는 오전엔 들판에서 촬영하고, 오후엔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편집을 해요.
그리고 저녁엔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하고 함께 밥 먹어요.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리듬이더라고요.”
이처럼 코워킹 스페이스를 통해 마을의 시간에 접속하고,
삶의 밀도를 새롭게 설계한 사람들의 경험이결국 이 마을을 다시 ‘인구가 들어오는 곳’으로 바꾼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코워킹 스페이스가 지역 인구 유입 플랫폼이 되기 위한 조건
영양의 사례가 단지 우연적인 성공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구조적 조건이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공간을 만든다고 인구가 늘지는 않습니다.
공간은 목적보다 ‘관계’를 먼저 설계해야 합니다
많은 지역이 코워킹 스페이스를 만들면서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곳”, “스타트업 인프라”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리모트 워커가 오래 머무는 공간은
‘편하게 관계 맺을 수 있는 분위기’를 우선적으로 제공합니다.
문턱이 낮고
규칙이 유연하며
서로를 강제로 연결하지 않으면서도
자발적인 연결을 돕는 구조
이런 공간에서 리모트 워커들은
자연스럽게 ‘머물 이유’를 찾게 됩니다.
일만큼 중요한 것은 ‘삶의 경험’입니다
리모트 워커는 단순히 책상이 아니라,
하루의 리듬, 풍경, 대화, 음식, 침묵 속의 몰입감까지 함께 고려합니다.
따라서 공간 외에도마을산책로
주말 장터지역 주민과의 소소한 교류 프로그램
거주지 지원이런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함께 설계되어야 합니다.
운영자 또는 지역 중개자의 ‘관계 매니징 능력’이 핵심입니다
영양의 성공 배경에는
공간을 운영하며 외지인과 지역 주민의 관계를 가교한
1명의 ‘마을 코디네이터’ 역할이 있었습니다.
이런 인물은 공간을 관리하는 동시에
리모트 워커의 성향을 파악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지역 행사에 초대하거나
주민과의 갈등을 예방하고
외부 지원사업을 안내하며
‘정착을 설계하는 조력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지역이 코워킹 스페이스를 통한 인구 유입을 고민한다면
가장 먼저 이 역할을 할 사람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공간이 지역을 바꾸는 가장 느리지만 가장 깊은 방법
코워킹 스페이스는 단지 일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 공간은 지역에 처음 들어온 외지인과
오래 살아온 주민 사이에 놓인 중립적인 접점입니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일하고, 식사하고, 대화하고, 실험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반복될수록
‘이곳에 살아도 괜찮겠다’는 감각이 서서히 생겨납니다.
영양군처럼사라져가던 마을에 다시 사람이 모이고,
그들이 머무는 데서 그치지 않고지역에 기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인구 수를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새롭게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전국 여러 소도시가코워킹 스페이스를 마을살이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공간에서 일어나는 삶의 질감과 연결의 경험입니다.
그걸 만들어낼 수 있다면,코워킹 스페이스는지방 소멸 시대를 넘어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코워킹스페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모트 워크 기반 코워킹 스페이스의 수익 모델 분석 (0) | 2025.08.09 |
---|---|
리모트 워커가 선호하는 코워킹 스페이스의 특징 (3) | 2025.08.07 |
코워킹 스페이스를 활용한 청년 창업 성공 사례 (0) | 2025.08.06 |
코워킹 스페이스 중심의 리모트 워크 커뮤니티 만들기 (0) | 2025.08.05 |
코워킹 스페이스 입지 선정, 왜 ‘소도시’가 유리한가 (0) | 2025.08.04 |